80년대 도시의 향수가 2025년을 점령하다 : 어느 늦은 밤, 유튜브를 무심코 스크롤하다가 타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가 추천 영상에 떠오른다. 클릭하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 80년대 일본의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도시 풍경 속으로 빨려 든다. 이것이 바로 지금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시티팝 2.0' 현상이다. 시티팝(City Pop)이라는 장르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일본에서 시작된 이 음악은 당시 경제 호황기의 도시적 세련미와 서구적 감성을 담아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재조명은 단순한 복고 열풍을 넘어서고 있다. 특히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Vaporwave'와 'Lo-fi Hip Hop' 문화와 결합되어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진화했다. 현재 젊은 세대들에게 시티팝은 단순히 '옛날 음악'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경험해보지 못한 아날로그적 감성과 도시의 로망을 제공하는 새로운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시티팝 플레이리스트의 조회수가 수억 회를 넘나드는 현상은 이를 뒷받침한다. 과연 40년 전 음악이 어떻게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것일까?
왜 지금 시티팝인가: 팬데믹이 불러온 도시 향수
집콕 시대가 만든 가상의 도시 체험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인들을 집 안에 가둬놨다. 외출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위안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 시티팝이 제공하는 '상상 속 도시의 밤'은 갇힌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도피처가 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80년대 일본의 도시는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이상향으로 다가왔다. 네온사인이 반사되는 빗물, 한적한 밤거리를 달리는 자동차, 도시의 불빛이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스마트폰과 SNS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아날로그적 감성의 해답을 제시했다. 마치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의 모습은 팬데믹 시대의 불안감을 달래주는 역할을 했다. 또한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이 보편화되면서, 집중력을 높여주는 배경음악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시티팝의 부드럽고 반복적인 리듬, 과하지 않은 멜로디는 작업용 BGM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수많은 '시티팝 스터디 플레이리스트'가 만들어지고, 이는 다시 새로운 리스너들을 유입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소셜 미디어가 만든 시티팝 르네상스
틱톡과 인스타그램이 키운 바이럴 파워
시티팝 2.0의 성공에는 소셜 미디어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특히 틱톡(TikTok)에서 시티팝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짧은 영상들이 바이럴을 타면서, 음악 자체보다는 '무드'와 '분위기'로 먼저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몰 풍경, 도시의 야경, 빈티지한 패션을 담은 영상들이 시티팝과 만나면서 특유의 미학적 코드를 형성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citypop, #aesthetics, #vaporwave 등의 해시태그를 통해 시각적 콘텐츠와 음악이 하나의 문화로 융합되었다. 젊은 창작자들은 80년대 일본의 시각적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이는 단순한 음악 감상을 넘어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발전했다. 유튜브에서는 'City Pop Mix', 'Japanese 80s Playlist' 등의 제목을 단 영상들이 수천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전 세계적인 확산에 기여했다. 특히 Lo-fi 힙합 채널들이 시티팝을 재해석한 리믹스 버전들을 선보이면서, 원곡의 매력을 현대적 감각으로 포장해 새로운 리스너층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현상은 알고리즘의 힘을 받아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었다.
시티팝 2.0의 진화: 옛것과 새것의 완벽한 조화
현대 아티스트들의 창조적 재해석. 흥미로운 점은 시티팝이 단순한 복고 열풍에 그치지 않고 현대 음악씬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위켄드(The Weeknd)의 'Blinding Lights', 듀아 리파(Dua Lipa)의 'Physical' 같은 글로벌 히트곡들에서 시티팝의 DNA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80년대 시티팝의 신스 사운드와 그루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새로운 '뉴트로(New-tro)'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국내에서도 선미의 'pporappippam', 아이유의 '에잇' 등에서 시티팝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인디 뮤지션들은 시티팝을 K-pop과 접목시켜 독특한 사운드를 창조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모방이 아닌, 한국적 정서와 현대적 감각이 더해진 진화된 형태의 시티팝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누구나 쉽게 시티팝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음악 제작 플랫폼들이 시티팝 템플릿과 샘플을 제공하면서, 아마추어 뮤지션들도 이 장르에 참여할 수 있는 문턱이 낮아졌다. 이는 시티팝 생태계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시간을 초월한 감성의 승리, 그리고 미래
시티팝 2.0의 부상은 단순한 음악 트렌드를 넘어서는 문화 현상이다. 이는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느끼는 향수와 그리움의 표현이자, 아날로그적 감성에 대한 갈망의 결과물이다. 특히 Z세대에게 시티팝은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에 대한 로망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가 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현상은 글로벌화된 세상에서 문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시작된 시티팝이 미국과 유럽을 거쳐 다시 아시아로 돌아오면서, 각 지역의 문화적 특색과 융합되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음악이 가진 보편적 언어로서의 힘을 다시 한번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 시티팝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 장르가 단순한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현대 음악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는 점이다. 가상현실과 메타버스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티팝이 그리는 80년대 도시의 풍경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시티팝은 또 다른 차원의 진화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시티팝 2.0의 성공은 좋은 음악과 진정성 있는 감정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40년 전 일본의 뮤지션들이 만든 음악이 2025년 전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음악의 놀라운 힘을 증명한다. 앞으로도 시티팝은 새로운 세대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주는 타임머신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